[뮤즈 모임] '원목'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입력시간 : 2019-03-20 21:08:30 , 최종수정 : 2019-08-03 15:27:07, 권호 기자

*사진출처:<unspalsh.com>



[뮤즈:송진우 작가] 원 목 : I Was Groot


2019. 03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씌워준 것과 같은 유리돔을 다이소에서 발견하고 장미를 그루트로 치환하면서 상상은 시작되었다. 철사를 꼬아 나무의 형태를 구성한 후 점토를 덧붙이고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하였다. 작품 상부의 그루트는 중국산 피규어를 구매하여 조각낸 후 배치하였고 나무집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케이크 위의 장식품을 작가가 혹시 쓸 일이 있을까 싶어 수집해 두었다. 색상 조합을 위해 진주 머리핀, 공예용 폼, 조화를 별도 구매하여 채색하였다.


세상에서 대부분의 비극은 ‘기회의 상실’에서 비롯한다는 견지를 고수하는 작가는 원목을 도구화된 대상으로써 감정적 이입이 용이한 캐릭터로 의인화하였다. 이러한 은유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화한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가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무책임한 소비를 경계하여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안한다.


“내가 그들에게서 발견한 · · · 결점 투성이인 인간에게는 여전히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번성해 나갈 방법을 모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뮤즈:심규락 작가]  <서리일까 설움일까> 


“왈! 왈왈! 멍멍!”


“장군이가 또 짖어대네…… 어? 서리다. 서…서…서리가 내린다! 서리가!!”


“아이고, 결국 올 게 와버렸구나!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매일 밤, 물 대접 떠놓고 기도를 올렸건만……”


“아가…… 넌 최선을 다했다…… 일단 추우니까 얼른 문 닫고 쉬거라……”


경기도 이천시 속 한마을의 모든 이들은 갑작스런 서리에 놀라 허둥지둥 대고 있었어요. 아무리 쌀로 유명한 농업도시라 지만 이토록 한 밤의 서리에, 귀신 본 것 마냥 정신없이 날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천 년이 넘도록 그들을 지켜본 저 역시도 적응이 아직 안 된 것 같아요.


앗, 제 소개를 아직 안 드린 채 혼잣말만 대추 열매처럼 후두둑 떨어뜨리고 말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이천 서 씨 집성촌 어귀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은행 나무랍니다. 여기에 뿌리를 내린 지 천 년이 넘었으니까 음, 그들의 언어를 빌리자면 고려 시대 때부터 여기에 있었어요. 마을 어귀에 떡 하니 서있어서 사람들은 저를 장승 나무라고 부르곤 해요.


이그이그, 사람들이 아직도 난리 법석이네요. 저기 기와 밑에서 담배연기에 한숨을 섞고 계시는 점례 할머니도 보이고요, 아까 힘차게 짖어대다가 결국 서리가 무서워 결국 자기 집 안에 숨어 꼬리를 추욱 내리고 있는 장군이의 모습도 보이네요. 어? 결국 가을 수확철의 벼처럼 배가 통통해진 설아 엄마는 방 안에서 우시나 봐요. 그렇게 몇 날 며칠 달빛을 맞으며 기도하시더니만……


“멍! 헥헥헥. 멍멍!”


“이그 욘석아, 올해에는 네 이름값을 해주길 바랐건만…… 밥이나 먹어라!”


장군이는 결국 올해도 서 씨 집성촌을 그녀로부터 지키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어요. 그녀가 누구냐고요? 여기 아이들의 입을 빌리자면 ‘서리 귀신’, 부녀자들의 단어로는 ‘왕후님’, 노인분들에겐 ‘아들 도둑년’이라고 불리는 존재에요. 그리고 이번에는 서리 귀신이자 아들 도둑년이라는 이름값을 한 거 같네요, 하루가 지난 지금도 설아 엄마는 계속 방 안에서 울고 계시니 까요.


“엄마, 왜 아직도 눈이 빨개? 서리 맞은 게 그렇게 아팠어?”


“흑흑흑…… 응, 멍이 든 거 같네...... 설아야, 남동생이 아니라 여동생 이어서 엄마가 미안해……”


“와, 진짜? 난 여동생이 좋아! 남자애면 옆집 병민이처럼 내 구슬 다 가져갈 거잖아!”


“……”


아차, 그녀의 이름을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그 유명한 관리인 서희의 손녀이자 고려 시대의 숙비, 호는 흥성 공주인 ‘원목 왕후’입니다. 원목 왕후는 그녀의 시호인데요, 시호란 산 밑에 사시는 서용배 할아버지의 말로는 왕이 죽은 자에게 내려주는 특별한 이름 이라나 뭐라나요. 아무튼 원목 왕후는 이곳을 항상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이곳 사람들은 그녀가 매년 한 번 올까 말까라고 생각하지만, 저랑 장군이의 눈에는 잘 보인답니다. 우리 둘은 이름값을 하기 위해 항상 그녀가 나타나면 열심히 가지를 흔들고, 힘껏 짖어서 알리려고 해요.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항상 핀잔뿐이지요, 을씨년스럽다나 뭐라나…


“그 아들 도둑년이 결국 서리를 내리더니…… 설아 어멈은 올해에도 딸을 낳겠네, 고민이 많겠소. 아들이 아니라서……”


“허허, 손자가 없는 건 고민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습니까. 우선 아가 몸부터 잘 추슬러야겠지요.”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저는 당연히 다 알기 때문에,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아주 슬쩍만 귀띔해 드릴게요. 1022년 (현종 13년)에 숙비로 책봉된 원목 왕후는 1057년 (문종 11년) 음력 5월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사를 지내야겠죠? 하지만 그녀는 왕의 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아들을 낳지 못하였어요. 조정에서는 설날 제사도, 상복 착용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문종은 결국 이를 따랐답니다. 그래서 화장으로만 장례를 치렀다고 해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마치 이 원목 왕후의 이야기인 것처럼 딱 들어맞아요. 음력 5,6월은 양력으로 7,8월! 아들이 없던 그녀의 한이 서리가 되어 매해 여름에 갑자기 내린다면, 서 씨 집성촌의 임산부들은 바짝 긴장을 합니다. 그녀가 귀신이 되어 서리와 함께 나타난다면, 아들을 못 낳는다는 얘기가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에게 ‘아들 도둑년’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거랍니다.


“그르릉… 그르르르르…”


“그렇지? 나도 너처럼 노력 많이 했어.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았지만, 아무튼 우리 둘은 열심히 알렸다고!”


“믕믕!”


“맞아 맞아, 둘 다 정말 이름값 열심히 했는데…… 우리가 괜히 장승이고 장군이겠어?”


“또, 또, 또! 장군아, 네 집에 안 보이더니 이젠 여기서 짖고 있었구나! 병민이가 너 보고 싶다고 하도 졸라대서 찾으러 왔다. 그만 짖고 얼른 돌아가자. 자, 착하지!”


까치 친구들이 앉아서 쉬길 좋아하는 까아만 지붕 아래 사는 수찬이가 냉큼 장군이를 데려갔어요. 저는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괜찮아요, 지금 저어기 산 넘어 보이는 홍시 같은 해님의 퇴근길을 보는 것도 재밌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한입 크게 베어 문 배가 하늘에 걸려 있어요…… 이상해요. 스산함이 점점 제 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너무 추워진 거 같아요, 아직 여름인데……


‘우수수 수수수수 쓰쓰쓰쓰쓰’


“저놈의 나무는 장승인 건지 취객인 건지, 좌우간 항상 가지만 떨어대네. 저거 저거……”


“멍! 멍멍! 왈! 왈왈왈!”


“시끄럽다 욘석아! 한 번만 더 짖으면 네 자식도 암컷일 줄 알아라!”




[뮤즈:김지아 작가] 개다리소반


이 새벽,

좁디좁은 나무 소반 한 칸에 묻은 희미한 자국들


작은 아들 때늦은 저녁상을 방까지 날래다 주던 어머니의 손자국


배곯은 작은 아들 뜨신 밥과 국을 넘치도록 담아내다 흘린 국물 자국


구수한 찌개 담은 낡은 냄비에 지진 까만 자국


낡은 나뭇결 따라 옹이 진 그리움의 자국들이

혀끝에서 맴돈다,

코끝에서 맴돈다.





[뮤즈:유슬기 작가] 우리의 숲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파란 이불을 덮고 있자니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다. 반짝이는 별들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있던 밤. 그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우리의 숲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들이 사부작 거리는 소리. 작은 사슴들이 폴짝거리며 풀밭을 뛰어노는 소리. 이거면 충분했다. 우리의 숲은 온전히, 우리의 것인 줄 알았다.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너무 놀란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난데없이 찾아온 그 손님들은 우리를 무참히 짓밟고 망가트렸다. 영원할 것 만 같았던 우리의 숲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우리는 다리가 잘린 채로 퍽퍽한 흙바닥에 일렬로 눕혀졌다. 별들이 반짝인다. 매일같이 보던 별인데 오늘은 유난히 더 멀게만 느껴진다. 너는 그대로인데.

밤은 가고 아침이 왔다. 어젯밤 우리의 숲을 짓밟은 그 사람들도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그러고는 우리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편을 가르고 평가를 한다. 나는 2등급이랜다. 나를 보며 뿌듯해한다.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너희가 평생을 함께한 우리를, 왜 우리를, 무슨 자격으로 판단하는 거야. 화가 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어 마음속으로나마 소리 없는 반항을 해본다.

그으으응 그으으응, 어제는 내 다리를 자르더니 이제는 내 옷을 벗기려 한다.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움직일 수가 없다. 그렇게 발가벗겨진 채 어디론가 옮겨졌다. 그곳은 뜨거운 햇빛만 내리쬘 뿐 아무것도 없었다. 목이 탄다. 목이 바짝 말라 온다. 그렇게 나는 점점 말라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그 사람들이 왔다. 그냥 그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그들은 자그마한 방에 우리를 차곡차곡 쌓았고 더 이상 마를 것도 없을 것 같았던 우리를 더 마르게 했다.


문득, 우리 앞에서 뛰어놀던 작은 사슴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사슴들도 우리를 찾고 있을까. 영원할 것만 같은 우리의 숲은 완전히,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뮤즈:도현 작가] 잘려진 보통 이상의 것


오랜 세월을 같은 자리에 머물며 기나긴 외로움을 홀로 이겨내던 너였다.

내가 살았던 고향에서 유난히도 굵고 키가 컸던 은행나무.

그런 너를 타고 올라가 낮잠을 청할 때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여유로움이 내 몸을 휘감았고, 밤이 되면 너는 어렴풋한 윤곽으로 변해 나와 함께 했다.


영원한 건 없는 이 세상의 법칙 속에 너의 존재도 그러했다.

곧게 뻗은 나무줄기, 포근한 그늘은 사라지고, 세월의 흔적만 남아있다.


나에겐 하나뿐인 노스탤지어.

유난히 긴 침묵의 배경 속에 욕심과 고독으로 점철된 삶이 녹아있다.




[뮤즈:최종욱 작가] 원목


원목을 말하자면 나무향기가 떠오른다. 그윽하고 향기로운 나무 냄새가 떠오른다. 원목은 포근하다. 든든하면서도 아름답다. 태양을 먹고 자란 원목은 아늑하다.


품위 있는 무늬로 있는 그대로의 속이 그지없이 따사롭다. 인간에 의해 뚝딱 변신한 나무는 자신을 다 바쳐 봉사한다. 한 때 살아있던 원목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다 바쳐 봉사한다.




[뮤즈:hainsea 작가]


피노키오는 그랬다.

돈이 열린다는 나무에 돈이 열려야 친구 할 수 있었고,

광대를 따라가 꼭두각시 인형과 친구 하고 싶었다.


제페토의 손길에 버즘 꽃이 피고,

골물과 함께 흐르는 기름칠이 겉돌아

이러다간,

기어코 한 자락 잎사귀 떨어져 버릴까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2월 17일 바다를 나간 고래뼈는 거대하고 새하얘 제 본래의 속살과 견줄법하다.


2월 17일 없는 배꼽을 돌에 묶어 스물의 제페토가 작았던 손으로 날 어루만지던, 어느 물길이어도 가득 잠겨 그 속을 알 수 있었던 적으로 간다.


2월 16일 되짚어본다. 어제, 내 아래 밟혔던 판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결국 피노키오는 제페토의 곁에 남았다. 물을 먹어 축축해진 몸체는 불길이 있어야만 마를듯했다. 따뜻한 것은 저만치 오래되어버린 손길일까.



피노키오는

감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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