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중세로의 시간 여행, 체코 체스키크롬로프

마을 사이로 블타바 강이 구불구불 흐르는 그림엽서 같은 풍경

입력시간 : 2019-08-14 06:29:57 , 최종수정 : 2019-08-14 06:30:51, 편집부 기자


보헤미아의 진주, 작은 프라하,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강과 숲을 간직한 비밀의 도시 체스키크롬로프. 중세시대 장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체스키크롬로프는 시간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여행지다.

 

도시를 한 바퀴 감싸듯 휘돌아가는 블타바 강변을 따라 형성된 건축물들과 그 틈바구니를 차지한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 유럽의 작은 타운은 발걸음 떼는 곳마다 볼거리를 드러낸다.

 

'구불구불한'이라는 뜻의 크룸로프는 도시를 휘감는 블타바 강의 지세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운명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체스키크룸로프 역사는 구불구불, 이곳 사람들의 삶도 구불구불...




마을의 관문인 망토다리를 들어서면 인구 만 오천 명이 사는 작은 중세 도시가 여행자를 기다린다. 3층으로 된 아치모양의 다리는 무거운 돌기둥이 받치고 있다. 낮은 통로는 극장 무도회 홀과 연결되어 있으며, 가장 위쪽 통로는 성의 정원이 있는 갤러리로 통한다. 이 다리의 이름은 서쪽 성을 보호하기 위해 요새화했기 때문에 붙여졌으며, 다리 위에 서면 이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문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그림엽서 같은 풍경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중세마을은 300년 동안 커다란 변화 없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유구한 풍경 때문에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작은 이 마을로 몰려든다. 이들은 도시를 S자로 휘감고 있는 블타바강에서 래프팅, 카누잉, 수영 등을 즐긴다.


 


 

절벽 같은 성벽 주변에 만들어진 계단식 야외극장은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열리는 공간이다. 강 건너편에서 의자를 놓고 앉으면 무대 공연을 볼 수도 있는 객석이 된다. 봄이 오면 강물처럼 선율이 흐르는 체스키크롬로프의 멋진 음악축제가 이곳에서 펼쳐진다.





이 성은 프라하 성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화려하기로 유명한데,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영주로 이 도시를 지배했던 로젠베르크 가문이 은광 수입으로 거부가 되어 이 도시를 건축했기 때문이다.


체스키크룸로프성의 명물인 7층의 붉은 첨탑은 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160여 개의 계단을 올라 원형 탑에 서면 구시가 전체와 그곳을 S자로 감싸고 흐르는 블타바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시가지 역사지구에는 고딕, 르네상스 건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도심의 절반은 유적과 상점이고 나머지 절반은 펜션, 민박집들로 채워진다. 체코를 대표하는 인상파 화가인 에곤 실레의 미술관도 여기에 있다. 에곤 실레는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도시 곳곳을 캔버스에 담아내었다.


보헤미안 지역의 유물을 보관한 역사박물관이나 체코 인형극의 인형들을 보관한 마리오네트 박물관 역시 이곳만의 정취가 묻어난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작은 책방과 골동품 상점이 나타나며 오래된 도시의 산책을 풍요롭게 한다.

 



이 도시의 메인 스퀘어 스보르노스티 광장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광장을 중심으로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된 시청사와 아름다운 분수대 및 그리스 성인의 조각 작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광장 한 가운데 1715년 페스트 퇴치 기념으로 추수감사절에 세워진 성 삼위일체 분수대가 우뚝 서있다.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는 중앙광장에서는 주말이면 흥겨운 공연이 열린다. 보헤미안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며, 예전 수공업으로 빚어냈던 각종 물건들을 파는 장이 들어선다. 광장을 중심으로 마을길이 방사선으로 뻗어 있으며 광장 주변의 오랜 건축물들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창문에 화분을 내놓아 거리가 화사하다. 외지인들은 일찌감치 이 부근에 숙소를 잡아놓고 영주들이 누렸을 옛 정취에 취한다. 펜션들은 대부분 강이 흐르는 목 좋은 곳에 들어섰고, 마을 뒷골목에는 운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길모퉁이 작은 클럽에서는 늦게까지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체코 프라하의 물가가 비싸고 도시 분위기가 위압적이라면 이곳은 저렴하고도 포근하다.

 

거리의 집들은 거의 모두 여행자들을 위한 펜션이다. 1992년 마을 대부분의 건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워낙 작은 마을이라 천천히 걸어도 한나절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

 

라트란 거리와 구시가를 잇는 라제브니키 다리 위에는 프라하 카를교에서 본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이 서있다. 다리 아래를 지나는 블타바 강가 카페에서 한가로이 커피와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보헤미아 삼림에서 시작된 블타바강은 이곳 보헤미아 남부 땅을 거친 뒤 프라하를 지나 독일까지 흘러 들어간다.






라제브니키 다리를 지나면 옛 영주들을 모시던 하인들이 거주했던 라트란 거리가 이어진다. 꼭 특별한 테마를 찾으려 하지 않더라도 도시 자체가 오롯하게 문화유적지라는 느낌이 전해진다. 오렌지색 지붕과 흰 담벼락은 동화 속 골목을 산책하는 착각을 안겨 준다. 돌길인 라트란 거리를 지나 성으로 오르는 길을 걸으면 중세마을의 관문인 부데요비츠카 문이 나오고 이 문을 들어가면 과거 중세시대로 돌아간다.


이 성은 르네상스 양식의 방, 바로크 양식의 홀 등 귀족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3세기에 영주가 축조했으며 14세기에 보헤미아의 대귀족 로젠베르크가의 소유가 되어 18세기까지 여러 차례 증축된 끝에 5개의 안뜰과 광대한 정원을 가진 대궁전으로 완성되었다.

 



영주의 성은 16세기에 르네상스식으로 개축돼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됐다. 영주의 집무실에서부터 외부 인사 접견실, 공주의 침실, 식당 등을 모두 볼 수 있다. 곰의 발과 머리를 그대로 남긴 곰가죽 카펫과 로마 황제에게 선물을 싣고 갔던 황금마차의 화려함도 로젠베르크 가문의 영화를 상징하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2광장은 제1광장의 더 위쪽에 위치한다. 여기가 바로 영주가 살던 곳으로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 건물들이 서 있다. 좀 더 올라가면 사교장으로 사용되던 제3광장이 있다. 이 밖에도 제4광장, 5광장 등이 있는데 광장들은 나름대로 용도가 다르다.


건물 사이의 코너를 활용해 만든 다락방이 앙증맞고, 1광장 아래에는 로젠베르크가를 상징하는 곰들이 사육되고 있다. 망토다리 위는 최고의 전망대로 360도 조망이 가능하고, 조각상들이 진열되어 있다. 성 아래로 굽이치는 블타바강이 스보르노스티 광장을 둘러싸듯이 돌아나가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공적으로 해자를 건설할 필요도 없이 강물과 산의 지형에 의해 보호받는 모습이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과 닮았다는 느낌이다. 강물은 영주의 성을 감아 돌아 흐르고 다시 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흐른다. 전형적인 중세 성곽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빨간 지붕과 하얀 벽을 가진 건축물들의 자태는 정겹기만 하다.

 

성곽 구멍을 통해 보이는 마을이 너무 멋져 혼자 슬며시 성에서 내려와 마을 골목을 지나서 강가의 작은 카페로 들어선다. 이방인들 속에서 번거로운 일상사들은 잠시 내려놓은 채 스메타나의 연작 교향시인 <나의 조국> 중 가장 유명한 2편인 <블타바>를 들으면서 와인 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블타바 강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만 내려가야죠.'. 집 사람 말에 번쩍 고개를 드니 강가 카페가 아닌 성 위에 서있다. 잠시 마음속에서 머물렀던 강가 카페는 가슴에 담아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성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한 번씩 고개를 돌려 블타바 강가를 내려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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